[데스크 칼럼] 여의도판 이익공유제 도입하나

입력 2022-10-27 17:50   수정 2022-10-28 09:05

얼마 전 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부가 케케묵은 ‘이익공유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정부는 조선산업의 원·하청 이중구조 해소 명목으로 내놓은 ‘원·하청 근로자 간 이익공유’ 대책을 발표했다. 원청에서 난 수익을 하청업체 도급비에 반영한다는 게 정부 방안의 핵심이다.

물론 원·하청 이중구조는 분명 해소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기업마다 수백~수천 개에 이르는 협력사의 매출 및 영업이익 기여도를 측정하고, 이익을 배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인 이유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
민간 기업 이익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나누자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1년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했을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익공유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번엔 여의도에서 ‘금융판 이익공유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잠재적 손실 공유’ 논란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금융투자협회가 국내 9개 대형 증권사에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자고 요청하면서다. 대형 증권사가 500억~1000억원씩 갹출해 ‘제2 채안펀드’를 조성하고, 자금난에 휩싸인 중소형 증권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해주자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조치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시장 안정을 위해 증권업계의 선제적이고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우량 ABCP와 기업어음(CP) 등을 시장 자체적으로 소화해줘야 무너진 단기자금 시장 기능을 회복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방법론에선 비판이 제기된다. 우선 시장 논리에 벗어난다. “그동안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번 중소형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고 대형사가 도와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불만이 많다. 업계 전반의 도덕적 해이만 불러올 게 뻔하다.
형평성·배임 논란 해소해야
대형 증권사의 주주와 이사회를 설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중소형사의 리스크를 떠안는 방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는 순간 곧바로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9개 대형 증권사는 27일 중소형사의 ABCP 물량을 업계 내에서 소화하는 방식 등으로 단기자금 경색 문제 해소에 기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의도 안팎에선 ‘업계 자율’로 포장된 채 조용하게 팔이 비틀린 합의란 말이 나온다. 경쟁사 리스크를 떠안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는 푸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당국이나 정치권이 설익은 정책이나 팔 비틀기로 시장을 움직이겠다는 건 ‘오판’이다.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그렇다. 제2의 채안펀드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갖춰야 한다. 우선 중소형사가 펀드에 적은 금액이라도 내게 해야 한다. 펀드 수혜 대상도 중소형사 ABCP에 국한하지 말고 미매각 ABCP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고 대형사도 배임 문제를 해소하면서 출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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